2018년 2월 17일 토요일

꺼지는 불과 안꺼지는 불

캄캄한 밤, 어두운 홀에서 홀로 서있는 사람이 촛불을 향해 '꺼져!'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촛불이 꺼지면 무슨수로 움직인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뜻하지 않게 촛불이 꺼지는 상황을 경험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시 불을 붙게 하기도 하지만, 꺼진 그대로 있다가 끝나버리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믿음이라는 촛불이 꺼진 것이다.

안타깝지만, 또 한편으로는 잘 된 일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 다. 영생불멸을 꿈꿨던 진시황제도 죽었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북한의 김일성도 실상은 죽은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의 사람은 죽었다 다시 살아난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또 예수의 사람은 자신의 육신을 장사지내고 (=죽이고) 새로운 몸으로 거듭난다고 한다. 이 몸은 육신의 몸이 아니요 예수와 함께 거듭난 신령한 몸이라고 한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아무튼 나에게 있어서 종교인이라는 믿음의 촛불이 꺼지고, 이제 조금씩 진정한 신앙이라는 믿음의 불이 붙고 있다.

과거에는 콧바람에도 꺼질 정도로 위태위태 하였으나, 접속 불량으로 사용 할때 마다 콘센트에 코드를 붙잡고 있어야 하는 어뎁터와 같았으나

이제는 조금씩 두꺼운 막이 형성되고 있다. 주님이 주신 막.

규모 10.0의 초강진이 수천번씩 100일동안 매일 찾아와도 흔들리지 않는

핵폭탄 100개가 동시에 떨어지는 일이 1000일동안 매일 반복되는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아주 단단하고 견고한 막, 그 막속에 믿음이라는 촛불이 있다.

물론 아직은 아니다. 그 막을 쌓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전에는 인간의 욕심과 생각으로 살았고 믿었지만

이제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삶과 믿음이다.

물론 그렇다고 주님께 모든 것을 위임하고 나는 주님이 일하시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주님이 하시지만 '나를 통해'하시는 것이다.

'내가' 살지만 '예수로'사는 것이다.

최근 며칠간 이 것을 깨달았다.

내 삶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문제들이 사실상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 보다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아 가고 있다.

당장 땅이 흔들리고 건물이 무너지는데 와이파이가 잘 안터지는 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 가?

주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지 않는 삶을 사는데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된들 무슨 소용일까?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지 않았는데 그러한 문제들이 어떻게 해결 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 이해할수 없을 지라도, 내 눈과 내 몸이 쇠잔해져도 내 곁에 계신 주님 음성을 들으며 주만 따르기를 원한다는 그 고백이 나의 진실한 고백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이 나의 진실한 고백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그 생각 조차도 주님께서 이끄시는 데로 하기를 원한다.

아멘.

2018년 2월 15일 목요일

나는

나는 할수 없지만 주는 하실수 있고
내 힘으로는 할수 없으나 주님의 힘으로는 하실수 있고
나의 의는 없으나 주의 의가 있으니

참 놀라운 일이로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자신 한들 무슨 소용이요?
주님을 힘입지 않는 다면 그것은 모래성 위에 지은 집이요, 주님과 무관한 일이로다.

주여! 내가 이 놀랍고도 평범한 사실을 깨달았 사오니, 내 평생에 이 것을 믿고 의지하게 하여 주옵소서.

나의 의가 없나이다. 오직 주 예수의 보혈을 의지하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나로 하여금 당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당신의 일을 하게 하소서.

주께서 나와 평생 함께 하시리이다. 아멘.

2018년 2월 14일 수요일

바람이 분다.

서늘한 바람이 나를 맞는 다.
부는 바람에 날리는 머릿결

일순간 얼굴에 부딛힌 바람에 내 마음은 요동친다.

톡 쏘는 사이다가 내 입안을 깨우듯
서늘하게 부딛힌 바람이 나의 마음을 흔든다.

서늘하게 부는 바람을 느끼며 살아 있음을 새삼 깨닫는 다.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메만지며 가던 길을 걷는 다.

그러나 이내 다시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나는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낀다.

2018년 2월 13일 화요일

음악

음악, 음악은 나에게 소중한 존재다.

나는 어두운 터널이 깊을 적에 음악을 들으며 견뎠다.

슬플땐 슬픈음악, 우울할땐 우울한 음악

그리고 나는 기쁠때에도 음악을 들었다.

날아 갈듯 기분을 좋게 해주는 음악, 행복을 주는 음악.

음악의 힘은 위대하다.

답답한 기분을 급 반전 시키기도 하고

슬플때 나를 알아주는 위로자가 되기도 한다.

또 음악은 나와 하늘을 이어주는 소중한 통로가 되기도 한다.

그 분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역사하심의 깊은 뜻과 그 크기를 느낄수 있게 해주는 음악..

또 때론 노래를 불러보기도 한다.

슬픔의 표출, 기쁨의 표현, 믿음의 고백, 삶의 여정을 담은 노래..

아름다운 멜로디들, 가사들.. 모두 모두 소중한 존재..

2018년 2월 12일 월요일

전반적으로, 그러나...

전반적으로 나는 내 삶에 만족 한다.

비록 모래위에 지은 집 같으나마 학업을 하고 있고
일은 힘들고 쥐꼬리만한 월급이나마 노동을 하고 있고

나름대로의 자유가 있어서 그 테두리 안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따금씩 답답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인가 막힌 것 같고, 지루한 느낌..

챗바퀴 처럼 돌아가는 삶에, 때로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독방(獨房)에서 살아가는 느낌도 든다.

물론 죄수의 감방 처럼 쇠창살은 없다. 당연히 내 손발목을 가로 막는 족쇠도 없으며 목을 감싸는 감금용 목걸이도 없다.

하지만 가끔은 "보이지 않는,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투명한 막이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인가?

내가 느끼는 실존의 상황이 진실인가? 아니면 나는 느끼지 못하는 진실이 따로 있는 것인가?

오래간의 해소되지 않은 고민들을 뒤로 한체 따듯한 커피 속에 잠시 상념을 잊는 다.

2018년 2월 7일 수요일

추어탕

오늘 같이 추운날엔 추어탕이 딱이다.

따듯한 추어탕 한그릇을 먹으면 몸이 훈훈해 진다.

물론 '추어'탕이기 때문은 아니다.

설렁탕, 부대찌게, 어묵탕등 다양한 국물류가 있으나 그 중에 추어탕인 이유는

'추어탕'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추운날 추어탕을 먹고
더운날 더위사냥을 합시다!

2018년 2월 6일 화요일

진리 안에 거한다는 것

진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일이다.

세상은 어지럽고, 거짓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그 거짓들은 자신들을 진실인냥 보이게 하기 위해 거짓을 진실로 포장한다.

따라서 진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정밀한 검증의 눈을 가지고 진리와 거짓을 분별해 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진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진리로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소들과 싸워야 하는 전쟁의 연속이다.

내 속에서 진리를 거부하는 습성, 진리로 사는 것이 아닌 나로 살자고 주장하는 습성들을 십자가 짐 같이 싸워 이겨내야만 한다.

외부에서 나를 방해하고 유혹하는 방해꾼들의 모략과 현혹을 이겨내야 하는 고행인 것이다.
이렇듯 진리 안에 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일이다.

그러나 나는 포기할수 없다.

이전에는 몰랐으나, 혹여 알았다 하여도 머리로만 알았으나

이제는 대략으로나마 진리 안에 거하는 것만이 나에게 유익이요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몰랐더라면.. 차마 몰랐더라면.. 그랬다면 모르겠지만

이 사실을 깨달은 이상 이 무겁고도 진지한 길을 갈수밖에 없다.

가는 길이 힘들어도 진리로 부터 오는 도움과 에너지를 힘입으며

때로는 나의 의지로써 송수신기의 다이얼을 진리에 맞춰서라도

진리 속에서 살기를 더욱더 애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라는 주어진 삶속에서 삶의 의미를 고민하며, 하루하루 진리 안에 거하며 그 진리를 탐구하며 사는 삶..

나는 그렇게 살리라. 그리고 그렇게 살기를 간구하리라!